<법천우> 명리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 다섯 -
주위의 사람들에게 동정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잠시 반성를 해본다. 지금의 이 자리와 환경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다. 무엇이 나를 괴롭힐까?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발달되어있다고 한다. 그러한 두려움은 어쩌면 지금의 인간을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을 모른다면 그것은 금수와 같다고들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해소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들이 가지가지이다. 여러 방법 중에 권하고 싶은 방법은 그 두려움을 직시하고 대면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생각처럼 그리 무시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과 생각 속에서 부풀려진 모습에 압도당하여 미리 주녹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리 선입관에 의해서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정면에서 도전해보는 것이 어쩌면 그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무의식속에 자리 잡은 당신과 나의 습관이 되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평상시 행동과 생각이 사실은 유전자에 적합하도록 이미 변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힘들고 괴로운 삶이라면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도 인간의 모습이다.
노력하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각자가 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궁극적인 자기 삶의 목표가 아닐까? 지금 아픈 것을 치료하는 당장의 처방책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일 경우 그 답은 의외로 대책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는 그저 산다고 표현하는데 쉬운 이야기로 무엇 때문에 산다고 하는 쪽이 훨씬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쉽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없다면 두려움은 계속 확대되고 커지기 마련이다. 삶이란 유동적이고 변화가 심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변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주위 사람들이 변화의 주인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야 고요한 호수처럼 잠잠히 있고 싶지만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생이요 삶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영되어 삶은 정처없이 흐르는 것이다. 정처없이 흐르기보다 어디로 흐를 것인지 우선은 정해야 한다. 사람의 행위가 죽는 것을 향하여 가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에 최종 목적지는 죽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죽기위해 돈을 원하고 참고 남을 해코지 하고 있는가 말이다. 결코 아니다. 죽엄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언제인가 누구에게나 오는 결과이다. 생자필멸이다. 문제는 죽는 순간까지 죽음이외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재물이던 명예이던 상관은 없다. 다만 목표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가 설정 되었다면 그러한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는가 하는 방법은 즉 성공하는 방법은 명리학을 이용한다면 많은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삶의 목표가 설정되어있다면 그 다음은 이를 위한 전략과 전술이 자연스레 생기게 되고, 이러한 전략과 전술은 생의 단계별로 구분되어 설정되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전략과 전술 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력과 전술이 시기와 때에 맞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이란 변화의 연속인데 변화란 시간적인 개념으로 그 변화 시기에 맞추어 현재 구사할 그리고 향후 전개될 상황에 맞는 전략과 전술이 구체적으로 수립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다고 하여 지금 상황이 아주 나쁜 상황일지라도 지금 작전을 펼 수 있을까? 비가 온다면 우산을 쓰거나 관망해야한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지금 작전을 펴기 보다는 앞으로 펼친 작전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이라면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힘들고 괴롭지만 향후 작전을 위하여 만전에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자기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행동하였다가 좌절 하거나 포기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멋지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은 좋은 때를 맞는 것 뿐이다. 성공한 이들이 알아서 행동을 했다기 보다 자기 운에 의해 적중했을 뿐이다. 이러한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성공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명리학이 절대적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계속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속에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습관화 되어, 나의 행동과 습관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위한 행동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나서야 할 때 나서야 할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삶을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그리고 자기의 생을 보다 의미있게 영위하고 한다면 , 당신의 조그마한 관심으로도 이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명리학을 최대 이용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명리학을 공부하는 명리인에게 제발 점쟁이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인간을 걱정하고 인간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조언해주는 명리인으로 자리를 잡기 바란다. 물론 명리학이 맞춘다고 하는 전제조건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주팔자에 있는대로 풀이감정해주는 것은 기본업무이고, 그것조차 확인 못하면서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명리학의 기본 뜻인 인간의 생을 사랑하고 도와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