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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法泉宇</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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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12 May 2026 07:29: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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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polaphic</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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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법천우&amp;gt; 블로그 두번째 연재를 마무리 하면서</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9796869</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블로그 두 번째 연재를 마무리 하면서&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지금 나에게 벌어진 모든 일의 대부분은 나의 책임이다. 내가 나의 모든 현상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선택에 보다 많은 사려를 하였다면 지금의 상황을 지금처럼 악화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럼 다 지난 이야기지만 그 당시 보다 많은 이성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사람이나 나를 이끌어 줄 충고가 없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 당시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아마도 감정적 요소가 절대적인 선택의 기준임으로 부인할 수 없다. 그 당시에 내가 여러 갈래의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나의 이성적인 결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삶 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 지도에 대한 정확도와 신뢰도의 문제는 두 번째로 치고, 그러한 지도조차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각자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선택이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지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 책임을 지고있는 중이니깐 말이다. 바로 그 지도역할을 해주는 것이 명리학의 골자이다. 명리학의 운로변화에 대해서 절대적 믿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그러나 삶의 지도에 제시할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 중에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자료에 속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지금의 명리학 데이터가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나온 일중에서 내가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항 중에 지금의 명리학 자료로 분석해보면 내가 이성적인 판단을 잘 했다기 보다는 잘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생에서 특히 중장년기에 겪은 삶의 파편들은 다 과거의 산물인 경우이다. 그러한 파편 중에는 나의 범위를 벗어난 힘에 의하여 어찌하지 못하고 맞은 것도 있지만, 냉정히 살펴본다면 그 파편의 대다수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맞는 것이다. 파편 하나하나 각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무의식이라는 보이지 않은 가면을 쓴 체,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것은 나의 감정을 포함해 습관 타성이 되어, 의식 속에 안개처럼 젖어와 활동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나이다.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 악순환되는 이 굴레를 벗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인간이라면 다 겪은 과정이라고 방관하기에 생이 삶이 너무도 벅차다. 악쓰고 살아봐자 100년도 못사는 인간이다. 좀 더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 방법은 이외에도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은 명리학이다. 명리학은 무지를 깨우쳐주는 학문이 아니라, 단지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지도일 뿐이다. 그 지도의 의미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서적도 결코 아니다. 다만 지도의 길이 어떤 길인지 알려주는 것 뿐이다. 이 지도를 활용하는 것은 본인 각자의 재량이다. 어떠한 구속력도 어떤 재미도 없는 것이기에 무미건조하지만 나는 이 지도의 가치는 당신이 생에 대한 고민하고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열기에 비례하여 그 값이 정하여진다고 단정 짓겠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 대하여 얼마만큼 관심이 있는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알고자 하라. 배운다고 설치지 마라 사실 배울 것도 없다. 배울 사람은 나중에 철학관이라도 차리겠다면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마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아무나 덤벼들 일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지도를 얻는 방법은 이외로 소주 한잔 값이면 된다.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하지 마라. 제대로 공부한 사람에게 정중하게 부탁하면 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다시 한번 말하지만, 명리학은 단지 지도일 뿐이다. 치료책이나 운명을 바꿜 수 있는 비책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 치료나 비책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 스스로가 갖고있는 당신의 몸과 마음 뿐이다. 치료나 비책을 내세워 그 댓가를 원하는 명리학자가 있다면 그것은 사기이고 거짓이며 악이다.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마라. 아무리 돈이면 다되는 세상이지만,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그냥 달리는 길보다 네이케이션을 설치하고 달리는 길이 실수를 덜 하고 실망과 좌절도 덜 겪을 것이기에 그대들은 지도 값만 부담하면 된다. 지도 값은 지도를 찾아준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정도의 사례면 충분하다. 더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제대로 명리학을 공부하였다면, 돈을 벌고자 명리학을 공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점쟁이 흉내를 내는 명리인이라면 결정은 당신 스스로 하기를 바란다. 계속 앉아서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아니면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올 것인지 말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나는 지금 명리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지 다른 부문은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거론할 주제도 못되기에 오해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다만 명리학 부문에 특히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철학원 또는 작명원 그리고 명리학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곳이 많는데, 이런 곳에 두군데를 방문하여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동일하면 그것은 당신의 지도를 일단은 믿어도 된다는 이야기이고,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 상이하다면 그것은 감정자의 감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다른 곳을 찾아가 감정을 받아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지도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비용은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다만 명리학에서 사주감정에 대한 감정을 서로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혹시나 어떤 곳에서 불쾌한 느낌을 계속 갖지말고 당신을 위해서 보다 확실한 나의 지도를 갖기위해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능정적인 생각을 갖고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올바른 지도를 찾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삶에 지혜롭고 슬기로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은 어떠한 모습일까? 나도 조그마하게 작명철학원을 차려놓고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감정이 전부다 옳다고 이야기 할 수 는 없다. 솔직한 심정이다. 족집게 도사가 아니기에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 점장이는 아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이해되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것을 찾아 이를 적용하고 응용하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 전부에게 쪽집계인냥 적중한다고 장담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학문이기에 그렇다. 물론 실력이 없으니 그렇다고 해도 변명은 하지 않겠다. 감정이란 암호해독과 유사하다. 사주팔자에 담겨져 있는 암호를 완전 해독하였다면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아마도 신의 영역이 아닐까 여겨진다. 나는 인간의 영역만 논할 뿐이자 신의 영역에 대해서 논할 수 도 없고, 논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기에 최소한 두 곳을 찾아 자문하여 보고, 자기의 지도를 확인하여 활용하라는 것이다. 나도 인간이기에 간혹 아침과 저녁의 감정에 대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싶지 않지만 시인해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의 명을 감정하고 그 암호를 해독하는 사람의 실체인 것이다. 문제는 그 감정을 받아가는 사람을 위해서 제대로 된 감정의 지도를 가져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리학은 알아맞히는 것보다 앞으로 어떨 것이다라는 측면에서 그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 이유는 과거지사는 이미 데이터에 나와있는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지금과 미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단지 미래에 대해 알아맞히는 작업은 확률적으로 50:50이다 반반이다. 맞으면 쪽집계요 안맞으면 돌파리로 끝난다. 명리학이 어느 부분이 그렇게 세세하게 맞출 수 있도록 세분되여 있던가? 물론 광범위한 부분의 감과 흐름정도는 읽어낼 수 있지만, 쪽집계가 필요할 만큼 인간사 세세한 것까지 집어낼 수 있을 만큼 필요한 데이터가 명리학의 사주팔자 안에 있었던가 말이다. 손님이 들어서자마자 무슨 용건 때문에 방문했는지 안다고 자랑하는 명리인도 있다. 참으로 웃음뿐이 안 나온다. 요즘 세상에도 그런 명리인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에 참으로 인간의 삶에 유용한 명리학이 여러 가지 탈을 쓰고 무도회를 벌이고 있는 현실이기에 당신들에게 내 살을 베는 심정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 하는 것이다. 명리학이 분명 필요하고 요긴하게 사용될 학문인데, 그 명리학의 자문을 귀할 이 바탕의 현실은 참으로 가관도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업을 하는 사람끼리 자기것만 옳고 나머지는 그르다라고 떠드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정오를 따져야 되겠지만 그 정오는 가릴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당신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같은 업을 하고 있다라는 점에서 썪은 고기를 판다고 하는 것을 밝혀줄 사람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런 가계가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이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명리학을 활용하기를 나 개인적으로 빌 뿐이다. 힘들어서 찾아오기보다 현명하게 자기의 삶에 대처하기위해서 방문하여 주는 시대가 온 것으로 믿는다. 재벌회장만이 이용할 수 있는 명리학이 아니다. 우리 각 개인이 자기 삶을 제대로 살고 싶다면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싶다면 당연히 명리학을 활용하여야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난세의 와중에 나를 찾고 나의 가족을 위하는 길이 될 것이다. 평생을 두고 후회해야할 일은 없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감사합니다. 법천우 배상&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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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 Nov 2011 15:26: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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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 다섯 -</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9796868</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 다섯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주위의 사람들에게 동정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잠시 반성를 해본다. 지금의 이 자리와 환경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다. 무엇이 나를 괴롭힐까?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발달되어있다고 한다. 그러한 두려움은 어쩌면 지금의 인간을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을 모른다면 그것은 금수와 같다고들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해소되거나 다른 방법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들이 가지가지이다. 여러 방법 중에 권하고 싶은 방법은 그 두려움을 직시하고 대면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은 생각처럼 그리 무시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과 생각 속에서 부풀려진 모습에 압도당하여 미리 주녹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리 선입관에 의해서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정면에서 도전해보는 것이 어쩌면 그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무의식속에 자리 잡은 당신과 나의 습관이 되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평상시 행동과 생각이 사실은 유전자에 적합하도록 이미 변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힘들고 괴로운 삶이라면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도 인간의 모습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노력하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각자가 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궁극적인 자기 삶의 목표가 아닐까? 지금 아픈 것을 치료하는 당장의 처방책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일 경우 그 답은 의외로 대책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는 그저 산다고 표현하는데 쉬운 이야기로 무엇 때문에 산다고 하는 쪽이 훨씬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쉽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없다면 두려움은 계속 확대되고 커지기 마련이다. 삶이란 유동적이고 변화가 심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변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주위 사람들이 변화의 주인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야 고요한 호수처럼 잠잠히 있고 싶지만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생이요 삶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영되어 삶은 정처없이 흐르는 것이다. 정처없이 흐르기보다 어디로 흐를 것인지 우선은 정해야 한다. 사람의 행위가 죽는 것을 향하여 가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에 최종 목적지는 죽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죽기위해 돈을 원하고 참고 남을 해코지 하고 있는가 말이다. 결코 아니다. 죽엄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언제인가 누구에게나 오는 결과이다. 생자필멸이다. 문제는 죽는 순간까지 죽음이외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재물이던 명예이던 상관은 없다. 다만 목표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가 설정 되었다면 그러한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는가 하는 방법은 즉 성공하는 방법은 명리학을 이용한다면 많은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삶의 목표가 설정되어있다면 그 다음은 이를 위한 전략과 전술이 자연스레 생기게 되고, 이러한 전략과 전술은 생의 단계별로 구분되어 설정되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전략과 전술 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력과 전술이 시기와 때에 맞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이란 변화의 연속인데 변화란 시간적인 개념으로 그 변화 시기에 맞추어 현재 구사할 그리고 향후 전개될 상황에 맞는 전략과 전술이 구체적으로 수립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다고 하여 지금 상황이 아주 나쁜 상황일지라도 지금 작전을 펼 수 있을까? 비가 온다면 우산을 쓰거나 관망해야한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지금 작전을 펴기 보다는 앞으로 펼친 작전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이라면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힘들고 괴롭지만 향후 작전을 위하여 만전에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자기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행동하였다가 좌절 하거나 포기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멋지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은 좋은 때를 맞는 것 뿐이다. 성공한 이들이 알아서 행동을 했다기 보다 자기 운에 의해 적중했을 뿐이다. 이러한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성공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명리학이 절대적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계속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속에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습관화 되어, 나의 행동과 습관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위한 행동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나서야 할 때 나서야 할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삶을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그리고 자기의 생을 보다 의미있게 영위하고 한다면 , 당신의 조그마한 관심으로도 이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명리학을 최대 이용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명리학을 공부하는 명리인에게 제발 점쟁이 역할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인간을 걱정하고 인간의 삶을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조언해주는 명리인으로 자리를 잡기 바란다. 물론 명리학이 맞춘다고 하는 전제조건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주팔자에 있는대로 풀이감정해주는 것은 기본업무이고, 그것조차 확인 못하면서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명리학의 기본 뜻인 인간의 생을 사랑하고 도와주라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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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Oct 2011 11:29:0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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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 넷 -</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9796867</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 넷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전략과 전술, 이는 군사적 용어이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단계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을 말함이다. 전략은 전술보다는 더 넓은 광의의 개념이고 전술은 현재 즉 지금 해야하는 세부적인 행동지침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어떤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행복이란 고지에 각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수단과 방법은 제각각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 또는 성공을 위한 자기만의 계획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계획 수립은 자기 독단적 주관적으로 세우기 마련이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러한 계획이 너무도 피상적이고 추상적으로 세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너무도 자기 중심적으로 세워기 때문일 수 도 있다. 그것도 자기의 재원을 충분히 검토한 상황이 아니라 그저 남들이 그렇게 했으니 또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의지 하나일 경우가 태반이다. 쉬운 이야기로 너무 안이하게 목표를 세우고 너무도 쉽게 그냥 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목표를 달성한다면 그것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운이 좋은 편이 아니다. 나와 나의 환경을 분석해서 나의 목표을 달성할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이고 계획을 세우라고 인간답게 살라고 공부했고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것이다. 공부의 목적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것이고 , 자기의 행복을 위한 프로젝트를 잘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을 세우고 전략 전술을 짤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우선은 자기자신의 내외부의 현황 즉 자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를 가늠해야 한다. 그러한 때를 감지할 수 있는 레이더 즉 정보가 필요한 것도 중요하다. 때를 알아야 공격할 것인지 수비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 분석에는 객관적인 방법과 주관적인 방법이 동원될것이고, 이러한 방법을 통한 분석결과에 기인한 선택의 결과는 그 정보의 질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나는 이러한 전략과 전술이 명리학을 바탕으로 한 분석을 활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명리학은 일단 자기분석의 90%이상 할 수 있고 ,단계별 전략과 전술의 응용과 방법에 대해서 80%이상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미래예측학이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것처럼 절대 과장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명리학이 허무맹랑한 팔자타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과대포장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전적으로 명리학을 믿고 전략전술을 짜라고 하고 싶다. 그것은 나만의 오판이고 착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도 팔자이기 하지만 말이다. 어떤 전략과 전술이던 명리학을 바탕으로한 것은 그만한 성과를 분명히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혜이고 슬기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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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0 Oct 2011 11:31:5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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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 셋 -</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9796866</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 셋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명리학은 각자의 성격 즉 개성을 알아 볼 수 있고, 운로를 참조하여 각 개인의 적성을 찾아 천직을 감정할 수 있으며, 이것 이외에도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로써 자기의 정체성을 파악하여 각자의 특성을 찾아내 자기만의 차별화된 삶을 구가하도록 제시하는 학문인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그러나 무엇보다도 개인 운로를 살펴야 한다. 지금은 전적으로 개인의 운로에 따라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작금의 세상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없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지금은 문제를 만든 사람들조차 대안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조차 갈팡질팡이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살던 아마존의 밀림지역에 살던 북극의 이글루에서 살던 사람은 살아간다. 인류 모두가 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양념을 바른 고기를 구워먹는다는 이야기는 신기루일 뿐이다. 사실은 부자도 있었다. 부자도 남들보다 조금 여유가 있다라는 것이지, 지금처럼 쌓아두고 숫자로 장난치는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 우리는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야하고 미국은 왜 우리에게 소고기를 사먹으라고 애걸하고 강요하는 것일까? 그것이 서로에게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이야기인데, 나의 생활이 어제보다 나아졌는가 생각을 해본다. 필요하면 사 먹고,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팔면 된다. 그것이 경제아닌가? 끝없이 성장 발전해야한다는 논리는 어디에 근거를 둔 주의일까? 이윤을 최대로 영원토록 유지해야 한다는 정신 참으로 무서운 생각이다. 이윤을 누구에게 얻을 수 있는가? 분명히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어야 득을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영원히 끝없이’ 라는 형용사를 거침없이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의지하거나 믿어서는 안된다. 자기의 삶을 자기의 운로대로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미친 사람들의 병동에서 살아남는 길은 두가지 뿐이다. 같이 미치거나 구석진 한 모퉁이에서 미친 사람의 발에 채이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같이 미친 쪽보단 힘들지만 제정신을 차리는 한구석 방법을 권하는 바이다. 그래야 죽는 줄 알고 죽을 수 있다. 죽는 것을 알아야, 인생의 막을 거두면서 허허롭게 미소 진 얼굴로 갈 것이 아닌가? 지금은 힘들고 벅차다. 그러나 명리학을 통하여 자기의 천명을 알고 즉 자기의 정체성을 알고 이세상을 자기의 운로에 맞추어 살아가자. 샘물은 밤낮으로 솟아나고, 솟아난 샘물은 흘려 흘려, 소를 만나면 머물고 다시 소가 채워지면 넘쳐 흘려 결국에는 바다로 당도하는 것처럼 유하게, 쿨하게 조금은 덜 벌더라도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이 명리학이다.&lt;/SPAN&gt;&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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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9 Oct 2011 14:28:30 +0900</pubDate>
    </item>
    <item>
      <title>&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 둘 -</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9796865</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 둘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사람의 운이 기구신일 경우, 즉 불여의할 기간 운이 나쁠 경우, 당사자은 긍정적인 환경보다 부정적인 환경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부정적인 환경은 당사자의 정신과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어 부정적인 사건의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는 경우가 높다. 그렇다면 이 기간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전환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예를 들어, 금전적 재성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리고 돈만 있다면 만사형통 고민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돈을 원하는 만큼 벌거나 나의 수중에 쥐고 있기위해 상환능력있는 다른 대출이나 차용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보고 난 뒤라 아무 대책이 전무한 상황인지라 로또 나 복권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요행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원인의 근본적인 원인은 돈인데, 당장에 의식주에 써야할 돈이 없는 처지에 그동안 부채의 이자 및 원금상환에 하루 왼 종일 채권자에게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참으로 난감하다. 아침에 차라리 눈을 뜨고 싶지 않다. 그냥 천국이던 지옥이던 극락이던 현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기를 바라는 절박한 심정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당사자의 모든 인간관계는 철저히 차단되고 피폐된 상황일 것이다. 두려움조차 없어진 무감각한 상태 광인 폐인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일단은 명리학 측면으로 검토해보자. 지금의 상황에 대한 반성이나 회한은 나중에 하자. 일단은 차분하여야 한다. 머리를 일단 비워야 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말자. 그런 다음 다음대운의 시기 상황을 살펴보자, 골이 있으면 언덕도 있는 법이다. 지금은 협곡에 빠져 갈팡질팡 하고있는 나의 모습이 애처러워 보인다. 협곡에 빠진 이유라던가 사유에 대해 생각을 일단 미루자, 이미 흐른 계곡물을 찾아봐야 어디에 쓸 것인가? 언덕이 보인다면, 언덕이 온다면, &lt;STRONG&gt;언덕이 있다면 제일먼저 몸건강을 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lt;/STRONG&gt;. 그래야 언덕에 올라서서 기지개를 펼 것이 아닌가? 일단 언덕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언덕에 대해서 한 점의 의혹도 가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천명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나의 팔자요 운로이기 때문이다. 생상유명이요 부귀재천이라 했다. 받아들어야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lt;STRONG&gt;두려워 하지말고 지금의 모든 것을 나의 마음속에 수용해야한다. 그것이 제1단계에 해야 할 일이다&lt;/STRONG&gt;. 누가 옆에서 도울 수도 없다. 내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절대 두려워 하지말라 더 이상 깨질 것이 남았는가? 남았다면 당신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더 이상 깨질 것도 없다면 그 무엇이 걱정이 되는가? 사람 노릇도 못하는 마당인데, 인간 대접도 못받는 상황인데 굳이 나까지 스스로 속이고 기만할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일단은 언덕이 있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이것이 삶의 모습 운로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버릴려고 애쓰지 말아라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더 찰거머리처럼 살 속으로 빠고드는 것이 현실이다. 겁먹지말고 다 수용하자. 그 다음 제2단계는 언덕을 올라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언덕은 있기에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사지가 멀쩡하다면 기어서라도 올라가면 된다. 기는 것이 창피한가? 아직도 창피 운운할 여유가 있는가? 신경쓰지마라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당신의 팔자대로 충실히 살고있는 것이다. 기는 것도 안된다면 몸통이라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언덕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준비하더라도 좋다. 당장에 먹는 문제를 해결했야 한다면 동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어차피 힘든 상황이 아닌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기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 만큼 그 대가는 언덕에서 보상될 것이다. 그것이 생이고 삶이다.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는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운이 아주 좋거나 아니면 거짓 또는 사기에 걸려든 것이다. 노력과 시간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절대 필요한 자기만의 자산인 것이다. 타인의 도움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마라. 운이 나쁘다는 것은 즉 골짜기에 있다는 것은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조난지역에 있다는 뜻이다. SOS 나 구조헬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기 때문이다. 언덕이 있다는 것은 명리학이 통계적으로 알려준다. 이것을 믿고 당신스스로 타협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명리학을 이용한 삶의 방법이다. 하고 안하고는 당신의 몫이다. 앞으로 이러한 과정도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자동으로 해결되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에는 명리인으로써 틀리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반만 아는 소치이다. 나머지 반의 몫이 있다. 명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자신이 갖고 태어난 운로의 변화에 대해서 70% 예측한 것이고, 나머지 30%는 인간의 의지 즉 선택에 대한 보상의 부분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타고난 대로 산다고 이야기 하지만, 대의가 그렇다고 하는 것이지 실제 삶 자체가 그것에 정확하게 부합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몫 선택의지가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선택의지가 없다면 이미 사람이 아니다. 선택의지란 운명적 부분도 잘 활용하도록 명리학은 제시하도록 암시되어있다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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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8 Oct 2011 11:29: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 하나 -</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9796864</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명리학을 꼭 알아야 하는 이유 -하나-&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천국이라면 몰라도 아마 이 지구상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벌어질 것이다. 지구의 삼분의 이 정도가 지금 신시장 자본주의에 빠져 똑 같은 방법으로 똑 같은 생각으로 힘 안들이고 돈을 벌고자 벌 떼처럼 주식시장이다 부동산시장이다 해서 아비귀환으로 달려들고 있지 않는가? 그래 세상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곳은 인간이 살고있는 세상이 아니라 극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빈자가 서로 빈 틈을 노리고 뒤집어 버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다. 영국과 미국의 징조는 그 낌새일 뿐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지혜롭게 살고싶은 사람들아 명리학을 십분이용하여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기분으로 살아감이 어떠하련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 꼴대로 사는 것이 세상이다. 내가 명리학을 강조하는 것도 내 꼴이다. 솔직히 타인이 불행하게 산다고 해서 나 자신이 즐겁게 사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순교자 역할은 할 수 없고 할 용기도 전혀 없다. 다만 패자처럼 살아온 입장에서 명리학을 활용했더라면 패자부활전에는 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반성이 있기에 권하는 것이다. 기업의 ceo 나 임원들은 후흑학을 배웠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후흑학을 배우기 전에 명리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후흑학은 전술이다. 전략없는 전술은 임기응변뿐이 안된다. 전략을 세우기 위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시간이다. 때이다. 때를 알아야 전술이 먹히는 것이다. 바른 전략 속에 시기에 적절한 전술은 다양성을 갖는 것이다. 먼저 자기를 명리학으로 알고 전술을 강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이 난세를 헤쳐가는 선봉장의 역할이 수행 될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사람은 각자 타고난 사주팔자대로 살아가는 것일까? 대답은 그렇다 이다. 사람은 각자의 운로를 타고난다. 그것은 그 사람의 천명이다. 그러하다면 굳이 살려고 애쓸 필요가 없지 아니한가?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이 팔자라면 굳이 인위적으로 고민하고 살 필요없이 그저 주어진대로 살다보면 그 살아온 길이 그리고 살아갈 길이 정해진대로 가는 것이라면 굳이 사주팔자를 알고자 할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히 타당한 말이고 맞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삶이 변화의 연속이고 그 변화를 각자가 정해진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니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맞다 그러나 그 말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갈 때만이 맞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아귀다툼 같은 세상은 없을 것이다. 내가 현재를 고수할 생각도 지금도 더 많이 소유하고자 더 많이 힘을 갖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해진 운로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사실은 중요한 사항을 빼놓고 생각을 한 것이다. 운로는 정해진 것이기에 정해진 길을 달려가는 운전자의 자세를 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줄 알기에 우리 모두는 운전면허를 가졌다. 특히 각자의 운로를 달릴 수 있는 운전면허는 타고나면서 지니고 있어야 하는 면허증이다. 그것은 타의던 자의던간에 무조건 쥐어지는 것이다.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으나 운전 실력은 배워야 는다. 장롱면허는 운전기술이 서툴다. 즉 사고의 연속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것도 팔자라면 팔자이지만, 즉 명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정해진 운로라는 것은 도로의 사정을 도로의 상태를 말함이다. 운전기술까지 이야기 함이 아니다. 운전하는 기술과 태크닉은 각자의 마음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운명미래 예측학의 예정설은 도로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이 도로를 달리는 사람의 마음 즉 운전기술은 하늘의 몫이 아니고 인간의 몫이라는 점을 구분하고 명리학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운전기술의 상황도 사주팔자에 암시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암시되어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사치에 가까운 분석일 뿐 최선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각자의 성격, 적성, 심리 그리고 이에 바탕을 둔 직업등을 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이야기로 평양감사가 싫으면 안 가는 것이다. 갈 것인지 안 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명리학은 만능이 아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천리안이 아니다. 명리학으로 모든 것을 풀 수는 없다. 도사도 식사하고 화장실에 간다. 도사도 인간이다. 우리보다 차원이 더 높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더 높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만 나는 명리학이라는 안경을 쓴 상태이서 이야기 함이다. 그들도 선택을 해야만 한다.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다만 그 선택이 불가피한 불가항력적 것이라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것은 정말 운명이다. 우리들의 대부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의 책임은 우리 스스로가 져야할 부분들이다. 선택을 잘하는 것 그것이 운전기술이다. 그러한 운전기술은 도로상황이 안 좋은 비포장 자갈길에서 대개 경우 차이가 난다. 나는 이정표만 보고 달리던 속력으로 그대로 달렸다. 나는 나의 길이 터널 공사중인 비포장도로인지도 모른체, 그냥 했던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로 상황은 전혀 볼 생각조차 못했다. 나는 나의 차 성능도 몰랐다. 그냥 남들처럼 벤츠나 무스탕 아니 어떤 차종인지도 몰랐다. 그냥 잘 달리는 차인줄 알았다. 사실은 리어커에 엔진을 단 정도의 자동차지 그냥 구르는 차인 것을 몰랐다. 결과는 안전히 박살났다. 그것은 나의 선택의 결과였다. 만신창이 된 몸으로 지금은 터널 밖을 나온 상태다. 그나만 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정리해보자 명리학에서 분명히 길의 상태를 알 수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방법은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기에 어떤 방식으로 갈 것인가 고민한다면 명리학을 활용해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도착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분명히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질주본능으로 달리기만 한다. 아니 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그냥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자 즉 성공하는 사람들은 앞길 도로에 대한 상황을 알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자기 삶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나는 그런 분들에게 명리학을 활용해보라고 권하는 바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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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7 Oct 2011 10:44: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amp;lt;법천우&amp;gt; 명리학 과 자본주의</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9796863</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lt;법천우&amp;gt; 명리학 과 자본주의 &lt;/SPAN&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요즈음을 자본주의 0.3의 시대라고 한다. 자본주의 0.1는 고전 자본주의 0.2는 케인즈 이후의 수정자본주의, 0.3는 신시장 자본주의시대라고 한다. 신시장 자본주의의 종말을 고하고 0.4시대로 들어서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모양이다. 세상의 변화를 무슨 컴퓨터 케임의 버전 업으로 설명하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기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다음에는 어떤 세상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데 자본주의 뿐이 없단 말인가? 그것은 오만이고 자만이다. 물론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민주 자본주의 아니면 공산주의이냐 라는 반문에 미리 밝혀두는 바이지만 나도 공산주의를 싫어하고 공산주의 두둔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다만 자본주의 다음 세상을 그려볼 수 없겠는가? 하는 단순한 차원의 의문이다. 자본주의 0.3의 모순은 이미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 했다.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강자 약식 무한경쟁 법에 위반이 안됐다면 무슨 짓이던 돈만 벌면 되는 생리 동물의 왕국이다. 이것은 미국식 서양식 사고이다. 이젠 그들은 어떤 돌파구를 찾아 갈 수 있을까? 실질적 가치가 없는 명목적 가치로써의 재화을 위하여 그들은 어떤 술수를 마련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한마디로 지랄판이다. 생지랄들이다. 부익부 빈인빈 밥을 굶어 기아 선상에서 헤메이는 것은 모든 각 개인의 능력 탓이라는 심리, 잘 먹고 잘 지냈다는 것은 조상 탓이 아니라 자기가 똑똑해서 그런 것이라는 오만 심리, 이 모든 것이 통하는 마치 진리인양 통하는 세상. 참으로 가관이로다. 그 끝에는 오만 과 자만으로 살아온 자들의 시체들로 넘치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냥 내탓이요 하고 죽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힘들어 하고 있다. 꽥소리라도 내고 죽어야 할 판이다. 너무도 힘들고 너무도 힘들어서 말이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등급이 정해질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인정해야겠다. 그러나 내가 사는 이 사회의 시스템이나 기능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들고 있다면, 일단은 때려 부수고 싶다. 재벌 회장들은 선대 회장의 덕을 입어 조상의 덕으로 지금에 이른 것이지 자기가 만든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0.3은 옳다. 출발점에서 같은 선에서 같은 능력을 갖고 했다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식 서양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작품이라면 우리 한국은 이미 그들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거니와, 우리 사회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지 않는가?&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국민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국민 대다수가 거지인 나라는 거지국가이다. 거지국민이 자기나라를 위한 애국심이 없어진다면 그 나라는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나라의 부자들은 자기들의 말을 거지국민이 잘 순종하리라 생각할까? 착각이다. 지금은 아직까지 설익은 자본주의에 물들은 거지국민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상당한 오산이다. 없는 자를 등쳐먹고 갈취해온 그들이 돈이라 모든 것을 벌린 그들이 과연 거지가 된 국민들을 걱정할 수 있을까? 착각이다. 할 사람이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총칼을 쥐고있다해서 국민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던가? 총칼이나 돈이나 무엇이 다름인가? 자본주의 0.4 참으로 좋은 이야기이다. 기업과 시장의 역할을 재정의 한다고 하는 세상 지랄하고 자빠졌다. 이것이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젠 필요없고 돈만 있으면 된다는 세상이다. 사람을 패놓고 매값을 주는 세상이다. 원 흥부전에 대신 곤장을 맞는 세상이로다.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해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경제라는 돈이라는 재화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나온 도구 일 뿐이다. 이 도구가 인간을 지배해온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는 역사가 짧은 국가의 국민들이나 총칼 앞세워 할 수 있는 논리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 두고 볼 일이다. 정치인과 경제인의 밀월의 시대는 지나고 아마도 서로 죽이지 못해 싸우는 통에 국민만 아마도 더 힘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결국에는 개인의 삶을 자기 본인 이외의 사항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이 속하는 지리적 상황에 국가라는 소속감이 부여되기도 하고, 민족이라는 소속감이 자리잡기는 하겠지만, 모든 여건은 환경일 뿐이다. 개인 삶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구성되기는 하겠지만 내가 한국에 살던 중국에 살던 미국에 살던 간에 한 개인의 삶일 뿐이다.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국민이기에 유태인이기에 한국인은 IMF을 통해서 다 죽을 것 같았지만 세상은 그러하지 않았다. 잘 산 사람도 많다. 이때에 재산을 불리고 등 따듯하게 산 사람도 많은 반면에 고통을 받은 사람도 많았다는 것이다. 독일 점령한 유럽지역에서 유태인들은 수용소로 끌려가 수많은 유태인이 학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유태인들은 살아 남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라던가 민족이라던가 하는 개념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전적으로 책임지는 구속결정력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개인의 삶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 개체일 뿐이다. 한 개체로써 생의 유지 여부는 전적으로 각자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이점에서는 범세계화를 마당으로 지금의 자본주의 0.3를 확대해온 미국식 주의이다. 과연 작금의 상황에서 계속 범세계화를 부르짖고 게임에서 진 빈자들을 제외하고 계속 진행될까? 아니면 다시 보호무역을 강조하면서 우선은 살아야겠다고 옛날로 회귀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그만한 대가는 아마도 참혹하리라 생각되는데 지금의 지표는 그냥 숫자의 의미 뿐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지금의 마당을 더 넓힌다는 전략아래 범세계화를 위한 인위적인 조치가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양수겹장이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하지만 강제로 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아직 녹슬지 않은 총칼이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일은 최소한 한국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저 기우로 넘어 가기를 바랐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지금 빈곤에 찌들어있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짹소리라도 내야할 판이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지금 자본주의의 종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종말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신시장 자본주의를 끝으로 그들의 잔치는 끝나고 있다. 잔치를 베푼 주인들도 술에 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잔치에 초대되었던 손님들도 헤매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잉카의 2012년 설이 이것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방법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 냉수 한잔 마시고, 어찌 살아야 하나 다시 점검을 해야 한다. 각종 경제지표의 의미가 무엇인가? 숫자의 장난이다. 다른 대안이 없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집안 식구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했다. 집안에 남아있는 것은 그저 불쏘시게로 사용될 주식 과 외국인의 얼굴이 인쇄된 달러 뿐이다. 병신취급 받던 다른 식구들은 이미 주녹이 들어 위로의 말 한마디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뻐금거리고 있을 뿐이다. 영국의 분노와 중동위 쟈스민 폭동도 없는 자의 신음소리이다. 저 신음소리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가?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다. 소수의 승자와 대수의 패자가 존재하는 세상. 계속될까? 하늘도 무심하다. 정말로 무위지도이다 하늘은... ... 도대체 천벌을 가하는 천둥 번개도 다 돈 벌려고 주식시장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탈루 불로소득 정말 있는 자들의 잔치이다. 그런 세상이 자행되고 있는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일까? 혹시 지옥이라 하늘도 신경을 아니 쓰는 것 같다. &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 &lt;/SPAN&gt;&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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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6 Oct 2011 10:55: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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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법천우&amp;gt; 명리학 과 자기 찾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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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명리학 과 자기 찾기&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괴로워 하지말고, 무언가를 하여야한다. 설령 지금 당장 죽엄이 찾아와 데리고 간다고 할지언정, 갈 때 가더라도 가는 순간까지 인간의 모습을 보이고 가자. 당신이 세상에 손을 내밀면, 세상도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다만 당신이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내민다고 세상이 손을 내미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손을 내밀 타임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을 명리학이 가르쳐 준다. 아무 때나 열심히 산다고 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니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관망이 필요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힘을 비축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 생이다. 최소한 60세 까지 살아보라. 몸이 벌써 힘들어한다. 이것이 자연의 생리이고 우주의 법칙이다. 우리는 고장이 없는 영구적인 기계가 아니다. 하물며 약하디 약한 인간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오만과 자만을 부리는 것일까?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원리에 순종해야 한다. 인간의 오만방자함은 그만한 댓가를 치루게 되어있다. 그것은 자기 파멸에 따르는 썩은 냄새의 고통 뿐이다. 서양식 사고의 유지는 힘을 바탕으로 먹고 산다. 힘이 없을 때, 무엇으로 지탱하고자 할 까? 힘의 행사는 주고 받음이다.힘을 줄 수 있을 때는 때가 좋아 자기가 앞으로 나선 것이고, 힘을 받아야 할 때는 때가 안좋아 내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선 것 뿐이다. 때의 변화는 하늘의 움직임이다. 하늘은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사계절을 어김없이 운행하고 있으면 만물을 생육하고 있다. 하늘아래 영원이란 없다. 다만 때를 달리하여 좋고 나쁨이다. 영원하다고 믿는 이들여!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겠다. 말하고 해서 이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말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세상이 그들이 하고자 하는대로 되어져 가고 있으니 말이다. 물질 만능주의에 이 시대에 이 공간에 살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더구나 자기 정신도 모르고 그냥 서구식의 본질도 모른 체 겉만 몇 개 알고 마치 서양사람처럼 살고있는 이 지경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만성 소화불량에 걸린 환자처럼 먹고사는 것이 괴롭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 방법 뿐이 없는 것일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아니다. 사는 방법은 수없이 많은 법이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지 그것은 각자의 취향이지만 여기에 절대 필요한 조건은 자기의 정체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바탕그림에 필요에 따라 다른 채색을 할 것이 &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아닌가? 작품의 평가는 자기의 뜻이 담긴 것이야 하듯이 생은 바로 자기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그냥 나 생긴대로 나인가? 요즈음는 성형수술로 전부다 미인이다 미남이다. 다만 돈이 없는 사람만 맨 얼굴이다. 정상이 아니다. 그저 남들이 다하는 것이라 나도 한다는 식은 자기의 정체성이 없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행동이다.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런데 정말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도 분명치 않다. 남들이 하는 것은 해야만 하는 우리네 삶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일단은 그저 고민 안하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삶이고 따질 개제도 안 된다.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 남들은 다하는데 나는 못하고 있는가?가 고민거리이고 괴롭힘이다. 성형수술이 필요한 사람은 해야 한다. 그런데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로마시대에 입안에 손을 넣어 위속에 먹은 음식을 토한 후, 하루 왼 종일 먹어대는 귀족들의 생활인가? 나는 그 차이를 찾지 못하겠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정체성에 대해서 나는 민족성이니 하는 국지적인 차이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민주 자본주의 시대에 전 세대는 하나의 카테고리에서 작동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세계화라던가 하는 물결 흐름를 거부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취향과 관계가 없다. 다만 이질적인 문화들의 섞임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 개인으로 삶을 이야기 하는 것뿐이다. 지금은 서구의 자본주의가 대세이고 주류이다. 문제는 배경은 동일한 것 같은데 내가 결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배경과 기타 요소들은 서구인의 입맛에 맞게 갈무리가 된 상태라는 것이다. 진짜배기는 그들의 수중에서 조종되고 수정되고 있으면, 우리는 조정되고 수정된 따르기만 하면 되는 보이지 않는 종속적인 관계라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경제를 조정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이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다. 그것은 그들이 이미 짜논 고스톱 판에서 게임하는 것와 같다. 총을 쏘는 방법을 배우긴 했지만 , 막상 결투할 능력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까? 자기식 대로 처리할 수 밖에 없다. 자기식 대로 하고자 하니 나의 정체성이 있냐 없냐하고 따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식 아니 나는 나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문제해결을 해야 한다. 삶의 문제는 당신과 나의 생의 문제이기에 남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다. 남이 도와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갇혀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가축에게 주는 사료일 뿐이다. 나는 그것조차 받아먹지 못하는 주제이지만 어쩌면 당신은 사료 대신 그들이 먹다 남은 빵조각을 먹을지 모르겠는데, 그것은 진정 인간으로 한 인간으로 사람의 삶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그래서 비록 초극목피할지라도 나는 나이고 싶은 것이고, 나의 삶이란 과정을 나의 것으로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가치기준이 생기는 것이고 이는 선택의 의지라는 과정을 통하는 행동이므로 전적으로 그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고 유지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의 생인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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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5 Oct 2011 10:56:2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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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법천우&amp;gt; 나의 팔자타령 - 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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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나의 팔자타령 - 둘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자본주의는 끝없는 욕망을 엔진으로 남보다 더 가질 수 있다는 동기를 연료로 작동되는 괴물기계이다. 가져도 가져도 밑빠진 항아리처럼 채워도 채워질 수 없는 소유욕이 있는한 어쩔 수 없다. 권력이던 재물이던 개인의 욕심이 전체의 욕심으로 대체된 적이 있던가? 지금은 개인의 욕심이 집단의 욕심으로 가면을 바꿔어 쓴 경향이지만 지금까지 한 나라의 국민조차 다 욕심을 누릴 수 있는 역사는 없었다. 될 수 가 없는 것이다. 된다고 하면 그것은 아마도 천국이겠지.... 그런 천국은 나는 꿈꾸고 있는 것이다. 꿈속에서 헛소리 하고 있는 것이다. 헛소리 다. 진정이다 . 잠꼬대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계속하겠다. 명리학은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자기의 지금의 현황 과 미래의 현황을 가르쳐 주는데로 사람이 산다면 지금도 그 효용성과 활용도가 아주 각 개인에게 적합한 이론인 것이다. 물론 현재도 이용할 사람만 이용하지만 그것도 그 기초와 원리도 모른체 말이다. 그나마 미신이라 하여 상종도 하지 말아야하는 무슨 잘못된 믿음처럼 치부하는 세상이지라, 나의 주장이 잠꼬대라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명리학의 기초와 원리를 유아때부터 초등학교 교육과정 기초이수학문으로 배워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는 것이다. 산수를 배우고 과학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국민이 다 같이 명리학의 기초와 원리를 몸에 익숙해진다면 이 세상은 인간이 사는 인간세상이 될 것이다. 그 세부적 사항에 대해서 논할 준비도 없기에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 수단과 방법은 모르겠다. 하지만 명리가 통용되는 세상에는 욕심이란 것이 통할 수 없다. 물론 자기의 사주를 속이는 그런 문제가 발생되겠지만, 그런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자기가 갖고 태어난 사주의 흐름의 맥은 절대적으로 인위적으로 변경하거나 작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한 직업 귀한 직업 구별이 없다. 귀천이 없는 사람 즉 자기들의 태고난 팔자대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현재 귀하다고 하는 정치인 경제인 그것은 그것을 하라고 태어난 사람들만 하며 된다. 그것이 왜 귀해야 하는가? 인간의 활동일 뿐이다.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필요에 의한 생긴 것 뿐 그 일 할 사람들이 하면 된다. 더 임금을 더 받아야 할 당위성은 없다. 그저 노동에 대한 대가로 차별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명리사상에 입각한 합의된 사항일 뿐이다. 좋은 것이라고 모두가 다 희망을 갖고 덤빌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부하고 에리트가 되어야 대접을 받고 왜 그래야 하는가? 대접을 당연히 해주는 것이 지당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천한 직업 왜 천하게 여기는가? 노동에 비해서 대가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가를 지금의 국회의원들 만큼 준다면 천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좌우지간 생각의 문제이겠지만, 그런 구별이 없는 최선을 다하면 그 사회에서 자기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존재감을 느끼고, 자기의 역할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자기 스스로 겸양해 질수 있는 분위기를 자기 삶을 살아가는 본인이 알 수 있고 다른 타인도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인간사는 세상이 된다면 어찌 싸움이 있고 죽이고자 하겠는가? 말이다. 있는 것 있는 대로 조화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지금은 준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각자 자기가 태어난 사주팔자 기준대로 사는 세상을 정말 원한다. 그 속에서 살고 싶다. 상대가 하는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세상, 상대가 힘든 것이 나의 기회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세상, 자기가 최선을 다했는가를 자기도 인지하고 우리 모두 인지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이 세상에 살고 있음을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세상, 이런 세상이 좋다. 좋을 것 같다. 세상사는 것이 왜 복잡하여야 하는가? 그것이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의 뜻인가? 점점 혼란과 혼돈으로 가는 서양의 논리는 정말 싫다. 육감적으로 싫다. 왜 이 세상이 살기힘든 판이 되어야 하는가? 왜 내가 이토록 힘겹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의식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지랄을 떨어야 세상을 산다고 하는 것일까? 물론 이런 생각조차 하지고 않고서도 사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않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궁서체; FONT-SIZE: 13pt; mso-hansi-font-family: 궁서체; mso-ascii-font-family: 궁서체&quot;&gt;좋은 이야기 한마디:&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궁서체; FONT-SIZE: 13pt; mso-fareast-font-family: 궁서체; mso-hansi-font-family: 궁서체&quot; &gt;*세상에 실망할 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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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4 Oct 2011 12:16:5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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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mp;lt;법천우&amp;gt; 나의 팔자타령 - 하나 -</title>
      <link>https://polaphic.tistory.com/9796860</link>
      <description>&lt;P&gt;&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FONT-WEIGHT: bold; 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gt;&amp;lt;법천우&amp;gt; 나의 팔자타령 -하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작금의 세상은 어지러움이다. 그동안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지탱해왔던 가치관이 흔들리는 것 같다. 모방할 곳이 없다. 배울 것이 없으니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고 하더라도 정말 위험한 노릇이다. 그동안 남의 뒤를 따라가다보니 정녕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자기 것이라고 챙길 것이 아닌가? 작금의 우리의 불안은 바로 나를 모르기에 벌어지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것도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형편이긴 하겠지만, 하루 세끼나 아니라 당장에 입에 풀칠이라도 하여야 한다는 없는 사람들의 처지는 더 어렵다. 세상이 뒤죽박죽이라도 먹고사는 문제는 내가 게으르고 나태하지 않다면 해결되어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안된다. 정말 더러운 세상이다. 이 더러운 세상을 어차피 살기 살아야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헤메이고 있을 뿐이다. 똥 마리운 강아지새끼마냥 그냥 주인의 회초리를 두려워하면서도 어딘가 자리를 잡고 일을 보아야 하는 맴도는 심정이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상황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 낼 것이 아닌가? 잘 먹고 잘 입고 잘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말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일단은 살아야 한다. 죽어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선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성격과 어떤 기질을 알아야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자기 적성을 알아야 자기 할 일을 찾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무작정 돈이 된다고 될 것 같다고 해서, 아무 것나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말이다. 다 식당이다. 다 가계이다. 다 부동산이다. 다 주식이다. 다 편드이다. 눈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침을 질질흘리면서 걸떡이는 모습들 이다. 할 사람이 하면 괜찮다. 개나 소나 다 하는 형편이니 아수라장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눈만 뜨면 지옥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아야한다. 자기 주제파악이 되지않은 상태에서 하는 짓이란 이것은 내가 하는 짓이라기 보다 내가 아닌 다른 것의 삶이다. 그런데 힘들고 괴롭고 불안한 것은 나 자신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먹을 것 참아가며 이빨을 꼭 다물고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새끼들 공부시키겠다고 이몸하나 작살난다 하더라도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별 짓을 다해 보았지만 지금도 그 고통을 머리에 이고 있다. 짐 덩어리만 물 먹은 솜처럼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머슴이나 하인들도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노예도 아니 자유인이라는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나 혼자만의 푸념이나 한탄일수 도 있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으니 심각하게 생각하고픈 것이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당연히 헤메이고 지금은 내가 만든 것이기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은 나의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렇게 된 현재는 숙명적 팔자타령도 크게 작용하고, 그 속에서도 나의 오만 과 자만이 만들어낸 나의 의지 선택 이 합쳐져 이루어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슬기롭고 성숙한 사람들만이 재앙을 예견하고 그 대비책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살아보니 알겠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 FONT-SIZE: 12pt&quot;&gt;세상에는 특별히 운이 좋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나 이들 조차도 행운의 여신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상과 믿음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와 다르게 살 수 밖에 없다. 그들을 질투하거나 비아냥할 자격도 없다. 솔직히 부럽다. 나도 그렇게 살고싶다. 그렇게 살고 싶기에 나의 정신 마음부터 정리하여여 한다. 그러기에 위한 도구로 명리학을 이용하여야 한다. 명리학을 통하여 나의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가늠해야 한다. 안개낀 야밤에 수렁에 빠져 허우져 거리고 있는 것인지, 이것이 얼마 동안 갈 것인지, 자기의 현황에 대한 감각과 앞일에 대한 이정표라도 보아야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을 찾아보고 수단을 강구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불쌍한 중생들이여 미혹에서 벗어나자. 미혹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물질 만능주의라던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돈없는 중생들아 우리가 이 시기에 태어나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물질 만능 풍조 즉 자본주의도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언젠가는 변한다고 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우리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한참이나 지난 시대가 되겠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지랄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가 인간이 누려야할 마지막 정신사조는 아니다라는 점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우리가 작금의 시대에 있다라고 하는 것이 불행할 뿐이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라고들 한다. 그래 부도 빈이 있어야 부지, 빈도 없는데 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서로 공존상생하여야한다. 공존상생 하기 위해서 서로들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느가? 말이다. 어떻게 조화를 이루면 살 수 있을까? 상대적 박탈감 없이 서로 있음으로 서로 살 수 가 있다라는 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알고 자기의 적성을 알아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도 먹고 입고 아이들 교육을 시킬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으로 명리주의가 정신바탕을 이루는 곳이다. 모든 사람이 명리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정오의 기준이 각자의 명리에 따라 순리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궁서체; FONT-SIZE: 13pt; mso-hansi-font-family: 궁서체; mso-ascii-font-family: 궁서체&quot;&gt;좋은 이야기 한마디:&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궁서체; FONT-SIZE: 13pt; mso-fareast-font-family: 궁서체; mso-hansi-font-family: 궁서체&quot; &gt;*인생의 마지막 의무는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 &lt;/P&gt;</description>
      <author>polaphic</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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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1 Oct 2011 10:07: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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